광속 불변은 가정인가, 사실인가

특수상대성이론을 배우면 첫머리에 이런 문장이 나옵니다: "빛의 속력은 광원이나 관찰자의 운동과 무관하게 누구에게나 c 로 같다." 기차에서 던진 공은 기차의 속도가 더해져 보이는데, 기차에서 쏜 빛은 그렇지 않다는 이상한 주장입니다. 그런데 교과서는 이 문장을 증명하지 않고 그냥 출발합니다. 뭔가 속은 기분이 들지 않던가요? 광속 불변은 증명 없이 믿어야 하는 가정일까요, 아니면 확인된 사실일까요?

답부터 말하면 — 둘 다이고, 하나 더 있습니다. 광속 불변은 실험이 먼저 들이민 경험적 사실(1887)이었고, 아인슈타인이 이론의 출발점으로 삼은 가정(1905)이 되었으며, 마침내 단위계에 새겨진 약속(1983)이 되었습니다. 시대순으로 하나씩 따라가 봅시다.

1. 경험 — 실험이 먼저 들이민 사실 (1887)

이야기는 상대성이론보다 18년 먼저 시작됩니다. 당시 물리학자들은 빛을 파동으로 이해했고, 파동이라면 매질이 있어야 하니 우주를 채운 "에테르"를 가정했습니다. 소리의 속력이 공기에 대한 속력이듯, 빛의 속력 c 는 에테르에 대한 속력이어야 했습니다.

그렇다면 실험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강에 떠 있는 배로 비유하면 이렇습니다. 속력이 같은 배 두 척이 같은 거리를 왕복하는 시합을 합니다 — 한 척은 강을 가로질러 갔다 오고, 다른 한 척은 강물을 거슬러 올라갔다가 타고 내려옵니다. 강물이 흐르지 않으면 무승부입니다. 그런데 강물이 흐르면 가로지르는 배가 항상 먼저 돌아옵니다. 거슬러 오를 때 잃는 시간이 타고 내려올 때 버는 시간보다 크기 때문입니다. 왕복 시간의 차이를 직접 계산해 보면 (강물 속력/배 속력)의 제곱에 비례한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강물이 흐르면 가로지르는 배가 항상 먼저 돌아온다

배 시합의 두 경우. 가로지르는 배(A)는 떠내려가지 않도록 상류 쪽으로 뱃머리를 기울여 젓고, 배(B)는 강물을 거슬러 올라갔다가 타고 내려온다.

그림의 기호로 계산해 봅시다. 배의 정지수(흐르지 않는 물) 기준 속력을 u, 강물의 속력을 v, 왕복 편도 거리를 D 라 합니다.

가로지르는 배 (A) — 떠내려가지 않으려면 상류 쪽으로 u\sin\theta = v 가 되게 비스듬히 저어야 하고, 그러면 강을 건너는 지면 기준 속력은 u\cos\theta = \sqrt{u^2 - v^2} 입니다. 왕복 시간은

T_A = \frac{2D}{\sqrt{u^2-v^2}}

거슬러 올라갔다 내려오는 배 (B) — 올라갈 때 지면 기준 속력은 u-v, 내려올 때는 u+v 입니다. 왕복 시간은

T_B = \frac{D}{u-v} + \frac{D}{u+v} = \frac{2Du}{u^2-v^2}

시간 차이 — 빼서 정리하면 (u - \sqrt{u^2-v^2} = \frac{v^2}{u+\sqrt{u^2-v^2}} 를 이용)

\Delta T = T_B - T_A = \frac{2Dv^2}{\left(u^2-v^2\right)\left(u+\sqrt{u^2-v^2}\right)} \;\approx\; \frac{D}{u}\left(\frac{v}{u}\right)^2 \qquad (v \ll u)

v > 0 이면 언제나 \Delta T > 0 — 가로지르는 배가 항상 먼저 돌아오고, 그 차이는 (v/u)^2 에 비례합니다.

마이컬슨-몰리 실험이 정확히 이 시합입니다. 배가 빛이고, 강물이 에테르입니다. 지구는 태양 주위를 약 30 km/s 로 돌고 있으니, 에테르가 있다면 지구 위에는 늘 그만큼의 "에테르의 강물"이 흐르고 있어야 합니다. 간섭계의 직각인 두 팔에 빛을 갈라 보내 동시에 왕복시키면, 강물 방향의 팔과 가로지르는 팔의 왕복 시간이 달라져야 합니다.

왜 장치를 돌리면서 재는가 — 간섭계는 각 팔의 왕복 시간을 따로 재지 못하고 두 팔의 차이만 봅니다. 그래서 장치 전체를 천천히 돌립니다. 두 팔의 역할이 서로 뒤바뀌는 동안 왕복 시간 차이의 부호가 뒤집히며 간섭무늬가 주기적으로 오락가락해야 하고, 그 진폭이 곧 에테르 바람의 세기를 알려 줍니다. 아래 사진의 장치를 수은 위에 띄운 것이 바로 이 회전을 부드럽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1887년 마이컬슨-몰리 실험 장치

1887년의 실제 장치. 거울과 광학 부품들이 한 변 1.5 m 의 육중한 사암판 위에 놓여 있고, 이 판 전체를 수은 위에 띄워 진동을 막으면서 어느 방향으로든 부드럽게 돌릴 수 있게 했다. 사진: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왜 계절을 바꿔 가며 재는가 — 지구의 공전 방향은 석 달마다 서로 수직으로, 여섯 달이면 정반대로 바뀝니다. 혹시 측정하던 시기에 태양계 전체의 운동과 공전이 우연히 상쇄되어 지구가 에테르에 대해 거의 정지해 있었다 하더라도, 다른 계절에는 반드시 공전 속도만큼의 에테르 바람이 불어야 합니다. 그래서 계절을 바꿔 가며 반복하면 이 우연까지 배제할 수 있습니다.

얼마나 차이 나야 하는가 — 30 km/s 는 광속의 1만분의 1이고, 위의 배 시합 계산대로 왕복 시간의 차이는 그 제곱(v^2/c^2), 즉 1억분의 1 수준입니다. 1887년 마이컬슨과 몰리는 거울 반사로 광로를 11 m 까지 늘린 간섭계를 만들었는데, 이 장치에서 에테르 바람 30 km/s 가 만들어야 하는 간섭무늬 이동(장치를 90° 돌렸을 때)은 0.4 줄무늬입니다.

얼마나 정밀하게 쟀는가 — 간섭계는 빛의 파장(수백 nm)을 눈금으로 쓰는 장치입니다. 이들의 장치는 0.01 줄무늬, 예상 신호의 1/40 까지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차이가 없었습니다 — 관측된 이동은 아무리 크게 잡아도 예상의 1/20 이하, 사실상 0 이었습니다. 에테르 바람이 있더라도 8 km/s 미만이라는 뜻인데 지구 공전만으로 30 km/s 는 되어야 하니, "정밀도가 모자라 못 본" 것이 아니라 충분히 보였어야 하는데 없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방향으로 재도, 계절이 바뀌어 지구가 공전 궤도의 반대편으로 가도, 결과는 같았습니다.

이 "차이 없음"은 그 후로도 한 번도 뒤집히지 않았습니다. 정밀 공진기로 방향에 따른 광속 차이를 찾는 현대의 실험들은 상대적인 차이가 있더라도 10^{-18} 수준보다 작다는 것까지 확인했고, GPS 는 광속 불변과 상대론적 보정 위에서 설계되어 내비게이션이 정확히 작동하는 매일매일이 사실상 검증의 연속입니다. 그러니까 광속 불변은 이론이 시켜서 믿는 것이 아니라, 실험이 먼저 보여 준 사실입니다.

2. 이론 — 아인슈타인이 출발점으로 삼은 가정 (1905)

사실이 확인됐으면 끝난 것 아닌가요? 아직입니다. "빛의 속력이 왜 안 변하지?"를 설명하는 일이 남았습니다. 당시 물리학자들은 에테르를 살리는 쪽으로 온갖 수선을 시도했습니다 — 에테르가 지구에 끌려간다, 물체가 진행 방향으로 수축한다….

아인슈타인의 1905년 논문이 남달랐던 지점은, 이 사실을 설명하려 들지 않고 출발점으로 승격시킨 것입니다. 상대성 원리(모든 관성계에서 물리 법칙은 같다)와 광속 불변, 이 둘을 공준(가정)으로 받아들이면 무엇이 따라 나오는가 — 동시의 상대성, 시간 팽창, 속력 변환은 전부 이 두 가정에서 논리적으로 흘러나온 결론입니다.

수학의 기하학과 같은 구조입니다. "두 점을 지나는 직선은 하나뿐이다" 같은 공리는 기하학 안에서 증명되지 않습니다 — 증명의 출발점이니까요. 마찬가지로 이론은 자기의 공준을 자기 안에서 증명할 수 없습니다. "광속 불변을 증명해 달라"는 요구에 특수상대성이론이 답할 수 없는 것은 이론의 결함이 아니라, 애초에 그런 종류의 문장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물리에는 이런 지위의 문장들이 몇 개 있습니다. F=ma 글에서 관성질량과 중력질량이 같다는 등가 원리를 이야기하며, "어떤 이유도 근원도 없이 그냥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할 쯤되는 당연한 것"이 되면 법칙이 아니라 원리라고 부른다고 했습니다. 광속 불변이 바로 그 지위입니다. 과학의 원리란 "증명된 문장"이 아니라 **"실험이 한 번도 배신하지 않아서 승격된 가정"**입니다. 언젠가 광속 불변을 깨는 실험이 나온다면 그날로 특수상대성이론은 수정되어야 하고, 그 가능성이 항상 열려 있다는 것이 물리를 과학으로 만들어 줍니다.

3. 약속 — 단위계에 새겨지다 (1983)

백 년 가까이 사실이자 가정으로 살아온 광속 불변에게, 1983년에 새로운 지위가 하나 더 생깁니다. 1 m 는 어떻게 정해졌나에서 본 것처럼, 빛의 속력을 c = 299\,792\,458 m/s 라는 오차 없는 정의값으로 못 박고, 거꾸로 미터를 "빛이 1/299 792 458 초 동안 가는 거리"로 정의한 것입니다. 광속이 불변이라는 확신이 없었다면 감히 할 수 없는 약속입니다.

그러면 이상한 질문이 생깁니다. c 가 정의값이면 "빛의 속력을 측정한다"는 말은 이제 무슨 뜻일까요? 단위계 안에서는 의미가 없어졌습니다 — 어떤 실험을 해도 c 는 정의상 그 값입니다. 하지만 광속 불변의 물리적 내용은 여전히 시험대에 있습니다. 방향을 바꿔도, 시간이 흘러도, 광원이 움직여도 빛의 속력이 정말 한결같은가 — 이 "한결같음"(로런츠 불변성)은 약속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라서, 1절의 공진기 실험들이 지금도 그것을 캐고 있습니다. 만약 방향에 따라 다른 광속이 발견된다면 미터의 정의가 흔들리는 게 아니라, 물리학이 뒤집히는 것입니다.

4. 한 걸음 더 — c 는 "빛의 속력"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요즘 물리학자들이 좋아하는 관점 하나. 특수상대성이론을 끝까지 따라가면, c 는 빛의 성질이라기보다 시공간 자체의 구조 상수라는 것이 드러납니다. 공간과 시간을 하나로 엮을 때 필요한 환산 계수이자, 인과관계가 전달될 수 있는 최고 속도입니다.

순서를 뒤집어 보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빛이 빨리 달려서 c 라는 특별한 속도가 생긴 것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의 관계가 정해지는 순간 그 관계 속에 특별한 속도 하나가 이미 정해져 있는 것입니다. 1초라는 시간이 몇 미터의 공간과 짝을 이루는지를 말해 주는 환산 비율 — 그것이 c 입니다. 빛은 이 속도를 만들어 내는 주인공이 아니라, 질량이 없는 덕분에 시공간이 정해 둔 그 속도로 달리는 여러 손님 중 하나일 뿐입니다. 질량이 없는 다른 것, 예를 들어 중력파도 정확히 c 로 전파되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그러니 "빛의 속력이 왜 불변이지?"라는 질문은 사실 "시공간이 왜 이렇게 생겼지?"라는 질문이고 — 그 답은 아직 아무도 모릅니다. F=ma의 등가 원리처럼, 궁금하면 여러분이 연구해 볼 대목입니다.

생각해 볼 것

  1. 본문의 \Delta T 식에 마이컬슨-몰리의 숫자를 넣어 봅시다: D = 11 m, u = c, v = 30 km/s. \Delta T 는 몇 초일까요? 그 시간 동안 빛이 가는 거리를 빛의 파장(약 550 nm)으로 나누면 몇 파장일까요? 장치를 90° 돌리면 두 팔의 역할이 맞바뀌며 이 차이가 반대 부호가 된다는 것까지 생각하면, 본문의 "0.4 줄무늬"가 어디서 나왔는지 재현할 수 있습니다.
  2. "모든 관성계에서 물리 법칙은 같다"(상대성 원리)와 "광속은 누구에게나 같다"(광속 불변) — 전자를 받아들이고 빛도 물리 법칙(전자기파)의 일부라고 인정하면, 후자는 저절로 따라 나온다는 논증이 가능합니다. 직접 구성해 봅시다. 그렇다면 가정은 사실 몇 개일까요?
  3. 마이컬슨-몰리 실험이 "차이 없음"을 얻었을 때, 당시 물리학자들은 상대성이론 대신 "에테르가 지구와 함께 끌려간다"는 식의 설명을 먼저 시도했습니다. 같은 실험 결과를 놓고 왜 다른 설명이 가능할까요? 어떤 실험이 두 설명을 갈라놓을 수 있을까요?
  4. 소리의 속력은 관찰자가 움직이면 다르게 측정됩니다. 소리와 빛의 결정적 차이는 무엇일까요? (힌트: 소리에는 매질이 있습니다. 마이컬슨-몰리가 찾으려던 것이 바로 빛의 매질이었습니다.)
  5. c 가 정의값이 된 지금, 뉴스에서 "빛보다 빠른 입자 발견?"이라는 기사가 나온다면 (실제로 2011년에 있었습니다 — 결국 측정 오류로 판명) 그것은 무엇을 재는 실험이었을까요?

덧붙임: "빛의 굴절에서 물속의 빛은 느려진다고 배웠는데, 광속 불변과 모순 아닌가요?" — 좋은 질문이고, 모순이 아닙니다. 광속 불변의 c진공에서의 빛의 속력이자 시공간의 한계 속도입니다. 물속에서 느려지는 것은 빛이 물 분자들과 상호작용하며 지나가느라 생기는 매질 속의 전파 속력(c/n, 물에서는 c 의 약 75 %)으로, 지위가 전혀 다른 양입니다. 사실 공기 중에서도 느려집니다 — 다만 공기는 워낙 희박해서 n \approx 1.0003, 즉 0.03 % 느려질 뿐이라 보통은 진공과 구별하지 않고 씁니다. 실제로 물속에서는 전자 같은 입자가 "그곳의 빛"보다 빨리 달릴 수 있습니다 — 아무 법칙도 어기지 않고요. 그때 나오는 충격파 같은 빛이 체렌코프 복사이고, 원자로 수조가 푸르게 빛나는 이유입니다. 넘을 수 없는 한계는 어디까지나 진공의 c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