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통 높이와 유량 — 높이가 2배면 유량도 2배일까
유량 측정 실험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눈에 띄는 사실이 있습니다. 물통을 높이 올리면 물이 세게 흐르고, 수위가 내려가면 유량이 줄어듭니다. 그럼 정확히 얼마나 줄어들까요? 높이를 2배로 하면 유량도 2배일까요?
물리 교과서는 이 질문에 깔끔한 답을 준비해 두고 있습니다 — 토리첼리 정리. 마침 우리에게는 보정까지 마친 유량계가 있으니, 교과서의 예측을 직접 검증해 봅시다.
예측 — 토리첼리 정리: Q \propto \sqrt{h}
마찰을 무시하면 에너지 보존만으로 답이 나옵니다. 수면에 있던 물이 높이 h 를 내려와 출구로 나올 때, 잃은 위치 에너지가 전부 운동 에너지가 됩니다:
출구 단면적이 A 이면 유량은
즉 높이를 2배로 하면 유량은 \sqrt{2} \approx 1.4 배가 되어야 합니다. 4배로 해야 유량이 2배가 됩니다. 수면이 출구보다 h 만큼 높기만 하면 통의 모양이나 크기는 상관없다는 점도 이 식의 매력입니다.
검증을 위해 예측을 일반형으로 적어 둡시다. Q = C\,h^n 이라 놓으면 토리첼리의 예측은 n = 0.5 입니다. 실험으로 n 을 재면 됩니다.
준비물
- 유량 측정 실험의 장치 그대로 — 보정된 YF-S401 + 아두이노, 코드도 그대로
- 줄자 (수면–출구 높이차 측정용)
- 높이 조절 수단 — 책 더미, 의자, 선반 등
- 공급 물통은 넓은 것이 좋다 (측정 중 수위가 덜 내려가도록)
<!-- TODO: setup.jpg — 높이를 바꿔 가며 측정하는 장치 사진 -->
방법
- h 의 정의를 정합니다: 공급 물통의 수면부터 호스 출구까지의 높이차. 줄자로 잽니다.
- h = 20 cm 부터 10 cm 간격으로 6~8단계를 만듭니다 (책상+의자+책 더미 조합).
- 각 높이에서 흐름이 안정된 뒤, 10초 동안의 누적 부피를 10으로 나눠 평균 유량을 구합니다. 1초짜리 순간값보다 지터가 훨씬 적습니다.
- 측정하는 동안 수위가 내려가 h 가 변합니다. 넓은 물통을 쓰고, 측정 직전과 직후의 h 를 재서 평균을 취합니다.
- 각 높이에서 2~3회 반복해 흔들림을 확인합니다.
분석 — 지수 n 재기
Q = C\,h^n 의 양변에 로그를 취하면
\log Q 를 \log h 에 대해 그리면 기울기가 곧 지수 n 입니다. 스프레드시트의 추세선(거듭제곱 회귀)이면 충분합니다. 토리첼리가 맞다면 기울기 0.5 의 직선이 나와야 합니다.
<!-- TODO: graph.svg — 로그-로그 그래프 (측정값 + 기울기 0.5 기준선) -->
<!-- TODO: 실측 결과로 채울 것 — 예상: n 이 0.5 보다 뚜렷이 크게 (1 근처로) 나온다 -->
결과가 맞지 않는다 — 왜?
직접 해 보면 n 은 0.5 로 나오지 않습니다. 대개 1 에 가까운 값 — 즉 "높이 2배면 유량도 거의 2배" — 이 나옵니다. 측정을 잘못한 걸까요? 아닙니다. 토리첼리의 가정이 우리 장치에서 깨져 있는 것입니다.
토리첼리 유도의 첫마디는 "마찰을 무시하면"이었습니다. 물이 넓은 통에 뚫린 구멍에서 곧장 뿜어져 나온다면 좋은 가정입니다. 그런데 우리 물은 가늘고 긴 호스(그리고 유량계의 좁은 물길)를 통과해야 합니다. 가는 관에서는 물의 점성 마찰이 흐름을 지배하고, 에너지의 대부분은 운동 에너지가 되는 게 아니라 관 벽과의 마찰로 사라집니다.
점성이 지배하는 흐름에서는 유량이 압력차에 비례합니다. 높이차가 만드는 압력차가 \Delta p = \rho g h 이므로
전기 회로의 옴 법칙(I = V/R)과 똑같은 꼴이라서 R 을 유로 저항이라고 부릅니다. 층류일 때 이 저항은
(하겐-푸아죄유 법칙, \eta 는 점성, L 은 관 길이, r 은 관 반지름) 입니다. 분모의 반지름 4제곱에 주목하세요 — 관이 조금만 가늘어져도 저항이 폭발적으로 커집니다. 내경 6 mm 호스 1 m 는 "넓은 통에 뚫린 구멍"과는 완전히 다른 물건인 것입니다.
정리하면, 실험 장치에는 두 효과가 함께 들어 있습니다:
| 지배 요인 | 예측 | 우리 장치에서 |
|---|---|---|
| 에너지 보존 (토리첼리) | n = 0.5 | 출구가 넓고 관이 짧을 때 |
| 점성 저항 (푸아죄유) | n = 1 | 관이 가늘고 길 때 ← 대개 이쪽이 이긴다 |
측정한 n 이 0.5 와 1 사이 어디에 있는지가, "우리 장치에서 에너지 보존과 점성 마찰 중 무엇이 흐름을 지배하는가"에 대한 실험적 답입니다. 교과서가 틀린 게 아니라, 교과서의 가정이 성립하는 장치가 따로 있는 것이지요. 법칙을 검증하는 실험은 법칙의 적용 조건을 배우는 실험이기도 합니다.
생각해 볼 것
- n 이 0.5 와 1 사이에서 나왔다면, 낮은 h 와 높은 h 중 어느 쪽이 저항 지배에 가까울까? (힌트: 유량이 커질수록 관 속 유속이 빨라진다.)
- 토리첼리 쪽으로 결과를 끌고 가려면 장치를 어떻게 바꿔야 할까? 반대로 n = 1 에 더 가깝게 만들려면?
- 토리첼리 유도에는 "수면은 거의 정지해 있다"는 가정도 숨어 있다. 넓은 물통일수록 이 가정이 잘 맞는 이유는?
- 물의 점성 \eta 는 온도에 민감하다 (0 ℃ 에서 25 ℃ 사이에 절반 가까이 줄어든다). 겨울 찬물과 미지근한 물로 같은 실험을 하면 n 과 유량은 각각 어떻게 달라질까?
- 물통을 채워 놓고 그냥 두면 수위는 시간에 따라 어떤 곡선으로 내려갈까? 토리첼리 지배면 \sqrt{h} 에 비례해 느려지는 곡선, 저항 지배면 지수적으로 잦아드는 곡선이 된다 — 아두이노의 누적 부피 기록만으로 확인할 수 있다.
더 해 보기
- 호스 길이를 2배로 늘려 보기 — 저항 지배라면 유량이 절반이 되어야 한다 (R \propto L).
- 호스를 아주 짧게 잘라 보기 — n 이 0.5 쪽으로 움직이는지. 위 2번 질문의 실험판이다.
- 굵은 호스로 바꿔 보기 — r^4 의 위력을 눈으로 확인한다.
- 미지근한 물(센서 보호를 위해 40 ℃ 이하)로 점성을 줄여 같은 h 에서 유량이 얼마나 느는지 재 보기.
실험이 이론대로 나오지 않는 순간이, 사실은 가장 배울 것이 많은 순간입니다. 이론은 언제나 어떤 가정 위에 세워지고, 실험은 그 가정이 현실에서 어디까지 성립하는지를 드러냅니다. 어긋남이 발견되면 이론은 가정을 다듬어 적용 범위를 분명히 하고("마찰이 없다면" → "점성이 있다면"), 정교해진 이론은 다시 새로운 실험을 부릅니다. 토리첼리의 매끈한 식과 가는 관 속 현실 사이의 틈에서 푸아죄유의 법칙이 자리를 잡았듯이, 물리는 이 주고받음으로 자라 왔습니다. 오늘 여러분의 그래프가 교과서와 다르게 나왔다면 그것은 실패가 아니라, 물리가 실제로 만들어져 온 방식을 직접 체험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