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kg 은 어떻게 정해졌나 — 물 1 리터에서 플랑크 상수까지
유량계 보정 실험에서 우리는 "물 1 g 은 곧 1 mL"라는 사실을 이용해 저울로 부피를 쟀습니다. 그런데 물의 밀도가 이렇게 딱 떨어지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킬로그램이라는 단위가 애초에 물에서 출발했기 때문입니다. 이 글은 1 kg 이라는 양이 지난 230년 동안 세 번 모습을 바꿔 온 역사입니다 — 물 1 리터에서, 금고 속 금속 덩어리로, 그리고 자연 상수로.
F=ma 글에서 "질량이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1 kg 이란 양을 먼저 정해 두었다"고 했고, 단위와 차원에서는 질량이 길이·시간과 함께 기본 단위라고 했습니다. 그 "정해 두었다"가 실제로 어떻게 이루어졌는지가 오늘의 이야기입니다.
1. 물 1 리터 (1795) — 자연에서 가져온 단위
프랑스 혁명 직후, 새 도량형을 만들던 사람들의 원칙은 "특정한 왕의 발 길이 같은 것 말고, 누구나 자연에서 다시 얻을 수 있는 기준을 쓰자"였습니다.
농담이 아니라, 당시 단위들은 정말로 사람 몸에서 나왔습니다. 길이 단위 피트(feet)는 이름 그대로 "발"이고, 프랑스에는 피에 뒤 루아(pied du roi, "왕의 발")라는 공식 단위가 있었습니다. 몸에서 온 단위는 잴 사람이 바뀌면 값이 흔들리고, 실제로 혁명 전 프랑스에는 지역과 업종마다 다른 단위가 수백 가지나 뒤엉켜 있었습니다. 도량형 통일이 혁명의 요구 사항 중 하나였을 정도입니다.
먼저 길이: 1 미터는 북극에서 적도까지 지구 자오선 거리의 1000만분의 1 로 정했습니다. 그 다음 질량은 새로 발명하지 않고 길이에서 유도했습니다.
1 그램 = 한 변이 1 cm 인 정육면체에 담긴 물의 질량. 그리고 실용적인 크기를 위해 그 1000배인 1 킬로그램 = 한 변이 10 cm 인 정육면체(= 1 리터)에 담긴 물의 질량을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물의 부피는 온도에 따라 변하니 기준 온도가 필요한데, 처음에는 어는점을 쓰다가 1799년에 밀도가 최대가 되는 4 ℃ 로 바꿨습니다. 최댓값 근처에서는 온도가 조금 어긋나도 밀도가 거의 변하지 않으니, 재현하기 좋은 영리한 선택입니다.
그래서 "물 1 L ≈ 1 kg"은 물의 신기한 성질이 아니라 정의를 그렇게 했기 때문입니다. 시험 삼아 외워 둘 필요도 없습니다 — 킬로그램이 물에 맞춰진 것이지, 물이 킬로그램에 맞춘 것이 아니니까요.
2. 금고 속 원기 (1799~2019) — 물에서 금속으로
그런데 물로 1 kg 을 재현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온도를 정확히 4 ℃ 로 맞춰야 하고, 순수한 물이어야 하고, 용기 벽에 붙는 물방울까지 신경 써야 합니다. 그래서 1799년, 물 기준으로 눈금을 옮긴 백금 덩어리를 만들어 "이것이 1 kg 이다"라고 선언했습니다. 1889년에는 백금 90 % + 이리듐 10 % 합금으로 만든 국제킬로그램원기(IPK)가 그 자리를 이어받아, 파리 근교 국제도량형국(BIPM)의 금고에서 유리종 세 겹 속에 보관되었습니다. 세계 각국은 이 원기의 복제본을 받아 자기 나라의 1 kg 으로 삼았습니다.

국제킬로그램원기(IPK). 지름과 높이가 각각 39 mm 인 백금-이리듐 원기둥으로, 유리종을 겹겹이 씌워 보관한다. 사진: BIPM, Wikimedia Commons, CC BY-SA 3.0 IGO
한 세기가 넘게 잘 쓰였지만, 원기끼리 정기적으로 비교해 보니 이상한 일이 드러났습니다. 원기와 복제본들의 질량이 100년 사이 수십 마이크로그램(μg, 100만분의 1 g)씩 서로 어긋나 있었던 것입니다. 지문 하나 무게도 안 되는 양이지만 문제는 심각합니다. 정의상 원기는 언제나 정확히 1 kg 입니다. 그러니 원기가 변해도 "원기가 변했다"고 말할 수조차 없습니다 — 원기가 가벼워지면 세상의 모든 킬로그램이 함께 무거워지는 셈입니다. 인공물 하나에 단위를 걸어 둔 대가입니다.
3. 플랑크 상수 (2019~) — 인공물에서 자연 상수로
그래서 2019년 5월, 킬로그램은 세 번째로 모습을 바꿨습니다. 이번에는 물체가 아니라 자연 상수에 값을 고정하는 방식입니다:
2019년 전까지 이 숫자는 측정값이었습니다. 원기가 1 kg 의 기준인 세상에서 플랑크 상수를 재는 실험이란 "원기 기준의 킬로그램으로 환산하면 h 가 얼마인가"를 알아내는 일이었고, 그래서 h 에는 늘 측정 오차가 붙어 다녔습니다. 2019년의 재정의는 이 관계를 뒤집었습니다. 그때까지 가장 정밀하게 측정한 값을 골라, "이제부터 h 는 오차 없이 정확히 이 값이다"라고 측정값을 정의로 바꿔 버린 것입니다.
이게 왜 질량을 정의하는 일이 될까요? h 의 단위 J·s 를 풀면 kg·m²/s — 안에 킬로그램이 들어 있습니다 (플랑크 상수의 차원을 요리하는 법은 플랑크 상수 차원과 단위에서 다뤘습니다). 이 단위를 이루는 세 조각 중 미터는 빛의 속력으로, 초는 세슘 원자시계로 이미 자연에 묶여 있습니다. 아직 자유로운 것은 kg 하나뿐입니다. 그 상태에서 h 의 숫자를 정의로 고정해 버리면, 등식이 성립하기 위해 이제 kg 쪽이 맞춰질 수밖에 없습니다: "1 kg 이란, 플랑크 상수를 측정하면 정확히 6.626\,070\,15 \times 10^{-34} J·s 가 나오도록 하는 질량이다." 측정 대상이었던 h 와 기준이었던 kg 이 역할을 맞바꾼 것입니다.
사실 같은 수법이 길이에서 먼저 쓰였습니다. 1983년, 그때까지 측정값이던 빛의 속력을 c = 299\,792\,458 m/s 로 정의해 버리자, 미터가 거꾸로 "빛이 1/299 792 458 초 동안 가는 거리"로 결정되었습니다. 속력을 정의로 승격시켜 길이를 얻었듯이, 플랑크 상수를 정의로 승격시켜 질량을 얻은 것입니다. (미터가 지구 자오선에서 여기까지 걸어온 역사는 1 m 는 어떻게 정해졌나에서 따로 다룹니다.)
물론 정의만으로 저울이 맞춰지지는 않으니, 실제로 1 kg 을 "꺼내는" 측정은 키블 저울(Kibble balance)이 맡습니다. 물체에 걸리는 중력을 전자기력으로 정밀하게 맞바꾸는 저울인데, 이때 전압과 저항을 양자 효과(조지프슨 효과, 양자 홀 효과)로 재면 전기량이 h 와 진동수만의 조합으로 표현됩니다. 그래서 키블 저울은 결국 "이 물체의 질량은 h 의 몇 배인가"를 알려 주는 장치이고, h 가 고정된 지금은 그 눈금이 곧 킬로그램의 실현입니다.
이로써 미터법 설계자들의 230년 전 꿈 — "누구나 자연에서 다시 얻을 수 있는 기준" — 이 질량에서도 이루어졌습니다. 금고가 불타도, 지구가 사라져도, 물리 법칙이 같은 곳이라면 어디서든 1 kg 을 다시 만들 수 있습니다.
4. 그래서 지금, 물 1 L 는 정확히 1 kg 인가
아닙니다 — 하지만 놀랄 만큼 가깝습니다. 정의가 원기로, 다시 플랑크 상수로 옮겨 가는 동안 값 자체는 이어받았기 때문에, 물의 밀도는 여전히 처음 설계에 아주 가깝습니다:
| 조건 | 물 1 L 의 질량 |
|---|---|
| 4 ℃ (밀도 최대) | 약 0.999975 kg — 25 ppm 차이 |
| 20 ℃ (상온) | 약 0.9982 kg — 0.2 % 차이 |
그래서 유량계 실험처럼 % 수준의 정밀도가 목표라면 "1 g = 1 mL"는 지금도 훌륭한 측정 도구입니다. 로드셀 저울을 분동으로 보정하고, 그 저울로 물의 부피를 재고, 그 부피로 유량계를 보정할 때 — 그 사슬의 맨 꼭대기에는 금고 속 원기가 아니라 플랑크 상수가 앉아 있는 것입니다.
생각해 볼 것
- 본문에서 미터와 킬로그램이 "측정값을 정의로 승격"시키는 같은 수법으로 재정의된 것을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초(시간)는 지금 무엇으로 정의되어 있을까요? 나머지 기본 단위(암페어, 켈빈, 몰)도 찾아보고, 2019년 재정의 때 킬로그램과 함께 바뀐 단위가 무엇인지 확인해 봅시다.
- 4 ℃ 를 기준 온도로 고른 이유를 다시 생각해 봅시다. 밀도가 온도의 함수 \rho(T) 일 때, 최댓값 근처에서 측정이 온도 오차에 둔감해지는 이유는? (힌트: 최댓값에서 d\rho/dT = 0)
- "원기가 가벼워지면 세상의 모든 킬로그램이 무거워진다"는 문장을 친구에게 설명해 봅시다. 정의와 측정의 차이가 드러나는 좋은 연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