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초는 어떻게 정해졌나 — 지구의 자전에서 세슘 원자까지
킬로그램과 미터의 역사를 봤으니 이제 마지막 조각입니다. 이 시리즈를 셋 다 읽으면 알게 되지만, 초는 단순히 "셋 중 하나"가 아닙니다. 1983년부터 미터는 초에 얹혀 정의되고, 2019년부터 킬로그램은 초와 미터에 얹혀 정의됩니다. 즉 초는 단위들이 기대고 있는 의존 사슬의 맨 밑바닥입니다. 초가 흔들리면 모든 단위가 함께 흔들립니다.
그리고 초의 역사에는 형제들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하나 있습니다. 미터와 킬로그램은 금고 속 인공물 원기의 시대를 거쳤지만, 초는 원기를 가져 본 적이 없습니다. 원기 노릇을 한 것은 — 지구라는 천체였습니다.
1. 하늘의 시계 — 하루의 1/86,400
수천 년 동안 시간의 기준은 하늘이었습니다. 사람에게는 시간을 재는 감각기관이 없어서, 반복되는 것 — 계절, 달의 차고 기움, 해의 뜨고 짐 — 을 세는 것이 시간 측정의 출발이었습니다 (이 이야기와 동서양 역법의 역사는 1초의 탄생에서 자세히 다뤘습니다). 하루를 24시간, 1시간을 60분, 1분을 60초로 쪼개면
여기서 "하루"는 태양이 남중했다가 다시 남중할 때까지의 시간입니다. 왕의 발 길이 같은 인공 기준과는 격이 다릅니다 — 지구의 자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고, 멈추지 않고, 아무도 위조할 수 없습니다. 자연에서 얻은 기준이라는 미터법의 이상을, 시간은 이미 수천 년 전부터 실현하고 있었던 셈입니다.
정확히는 "평균"태양일입니다. 지구 공전 궤도가 타원이고 자전축이 기울어 있어서, 해시계로 잰 하루의 길이는 계절에 따라 최대 30초쯤 오르내립니다(균시차). 그래서 일 년 치를 평균한 가상의 태양으로 하루를 정의했습니다 — 기준을 다듬는 솜씨는 이때부터 이미 상당했습니다.
2. 지구는 불량 시계였다
20세기에 수정 시계와 정밀 천문 관측이 등장하자 불편한 진실이 드러났습니다. 지구의 자전이 일정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달이 일으키는 조석 마찰 때문에 자전은 조금씩 느려지고 있고(100년에 하루가 약 2 ms 길어지는 수준), 계절에 따라서도, 예측 불가능하게도 요동칩니다.
미터에서는 원기가 자오선과 어긋났고, 킬로그램에서는 원기들이 서로 어긋났습니다. 초에서는 — 행성이 어긋났습니다. 구조는 똑같습니다. 기준으로 삼은 실물이 변하는데, 정의상 기준은 변할 수 없으니 "하루의 1/86,400"이라는 초가 해마다 조금씩 다른 길이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시계가 초를 재는 게 아니라 초가 시계(지구)를 따라 흔들리는 상황입니다.
3. 공전으로 피난 — 역표시 (1956)
첫 번째 대책은 더 안정된 천체 운동으로 갈아타는 것이었습니다. 자전 대신 공전: 1956년, 초는 "1900년 기준 회귀년의 1/31,556,925.9747"로 재정의되었습니다. 역표(ephemeris, 천체의 위치를 계산한 표)에서 나온 시간이라 역표시라고 부릅니다.
정의로는 더 안정적이었지만 실현이 끔찍했습니다. 이 초를 실제로 얻으려면 달과 별의 위치를 수년에 걸쳐 관측해서 궤도 계산과 대조해야 했습니다. 필요할 때 금고에서 꺼내 볼 수도 없는 기준이니, 과도기 이상이 되기 어려웠습니다.
4. 세슘 원자 (1967~) — 완벽한 원기를 찾다
해답은 미터의 크립톤 재정의와 같은 곳, 원자에서 나왔습니다. 원자 속 전자가 특정한 두 에너지 준위 사이를 오갈 때 내놓는 전자기파의 진동수는 원자라는 종의 고유한 성질입니다. 세슘-133 원자는 우주 어디의 것이든 완전히 똑같고, 닳지도 늙지도 않습니다. 인공물 원기가 도달할 수 없는 이상적인 기준입니다.
1955년 영국 NPL 의 에센과 패리가 첫 세슘 원자시계를 만들었고, 1967년 국제도량형총회는 초를 재정의했습니다:
1 초 = 세슘-133 원자 바닥상태의 두 초미세 준위 사이 전이에서 방출되는 복사가 9,192,631,770 번 진동하는 시간

미국의 1초 기준을 담당해 온 세슘 분수 원자시계 NIST-F2 와 개발자들. "시계"라지만 시계판은 없고, 세슘 원자를 분수처럼 쏘아 올리며 전이 진동수를 세는 실험실 장치다. 사진: NIST,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이상하게 생긴 숫자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새 정의의 1초를 옛 역표시 1초와 최대한 같게 만들도록 진동수를 측정해서 그 값을 그대로 못 박은 것입니다. 미터와 킬로그램에서 본 패턴 그대로 — 정의가 바뀔 때 값은 이어받습니다. 세상의 시계를 다시 맞출 필요가 없도록.
5. 정리 — 세 단위, 하나의 이야기
왜 하필 이 셋에서 이야기를 끝낼까요? 초·미터·킬로그램이 바로 역학의 기본 단위(MKS)이기 때문입니다. 단위와 차원에서 본 것처럼 속력, 힘, 에너지 같은 물리량의 단위는 전부 이 셋의 곱하기·나누기로 만들어집니다. 그러니 이 세 단위의 정의가 서면 역학의 모든 단위가 따라 섭니다. (SI 전체로는 전류의 암페어 등 기본 단위가 일곱이지만, 그 정의들도 2019년에 같은 방식 — 자연 상수 고정 — 으로 정비되었습니다. 넷째 단위 암페어의 유난히 기구한 역사는 1 A 는 어떻게 정해졌나에서 이어집니다.)
| 초 | 미터 | 킬로그램 | |
|---|---|---|---|
| 자연에서 출발 | 지구 자전 (하루의 1/86,400) | 지구 자오선의 1/10⁷ | 물 1 L 의 질량 |
| 기준의 배신 | 자전이 느려지고 요동침 | 원기가 자오선과 0.2 mm 어긋남 | 원기들이 수십 μg 표류 |
| 원자·상수로 | 세슘 전이 (1967) | c 고정 (1983) | h 고정 (2019) |
| 지금 기대는 곳 | 세슘 원자 | 초 + c | 초 + 미터 + h |
표의 마지막 줄이 의존의 사슬입니다. 킬로그램은 미터에, 미터는 초에 기대고, 초는 세슘 원자가 떠받칩니다. 현대의 단위계는 결국 "시간을 재는 능력" 위에 세워진 탑입니다. 시간이 밑바닥이 된 이유는 단순합니다 — 인류가 가장 정밀하게 잴 수 있는 물리량이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세슘 시계의 오차는 수천만 년에 1초 수준입니다). 1초를 이렇게까지 정확히 알아야 CPU 클럭과 펨토초 레이저가 굴러간다는 이야기는 눈깜짝할 사이는 너무 길어에서 다뤘습니다.
우리 실험도 이 탑 위에 있습니다. 유량계가 "1초 동안 센 펄스"로 유량을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두이노 속 수정 진동자가 세슘 기준에 보정된 사슬의 끝자락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세슘보다 훨씬 빠르게 진동하는 빛을 쓰는 광학 시계는 이미 세슘 시계보다 100배 정확하고, 2030년대에 초의 재정의가 논의되고 있습니다. 그때가 오면 이 글에는 6절이 추가될 것입니다.
덤: 원자시계로 초를 정의하고 나니, 불량 시계인 지구와의 사이가 벌어집니다. 지구 자전 기준의 하루와 원자시계의 86,400초가 어긋나는 것을 맞추려고 이따금 윤초(leap second)를 끼워 넣어 왔는데 — 컴퓨터 시스템들이 윤초 때마다 말썽을 일으킨 탓에, 2035년까지 윤초를 폐지하기로 2022년에 결정되었습니다. 천체의 시간과 원자의 시간이 마침내 갈라서는 중입니다.
생각해 볼 것
- 9,192,631,770 이라는 숫자는 왜 10,000,000,000 같은 깔끔한 수가 아닐까요? 세 단위의 재정의에서 공통으로 나타난 "값 잇기" 패턴으로 설명해 봅시다.
- 해시계의 하루는 계절마다 다른데(균시차) 우리는 왜 느끼지 못할까요? 손목시계·휴대폰 시계의 하루는 무엇 기준일까요?
- 윤초를 폐지하면 아주 먼 미래에는 원자시계의 "정오"가 한밤중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폐지하는 게 맞을까요 — 시간의 기준은 하늘이어야 할까요, 원자여야 할까요?
- GPS 위성에는 원자시계가 실려 있고, 상대성 이론 보정(하루 약 38 μs)을 하지 않으면 위치 오차가 하루에 10 km 씩 쌓입니다. 시간의 정밀도가 왜 "위치"의 정밀도가 될까요? (미터의 1983년 정의를 떠올려 봅시다.)